최근 싱가폴에 다녀간 고등학교 친구가 한명 있었다.
친구가 싱가폴에 머무는 동안, 퇴근 후 함께 클라키 강변에서 시원한 파인트를 즐기며 간만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 도중에 친구가 '싱가폴 날씨도 덥고 재미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사냐?'라고 불쑥 말을 꺼내는 것이다.
싱가폴에는 잠시 출장차 또는 여행차 몇 번 오고갔던 친구의 의견인지라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괜찮을 듯 하지만,
실제 싱가폴에서 오래동안 살고 있는 한국인들 중에서도 '싱가폴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막상 싱가폴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중에는,
'싱가폴 만한 곳이 없다'라고 하면서, 싱가폴 예찬론자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고,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싱가폴 정말 재미없고 살기 힘들다'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다.
왜 이렇게 호불호가 나뉘는 것일까?
우선 사람마다 삶의 환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준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서울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서울이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관점과 가치관의 문제이지, 싱가폴이라는 나라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좋거나 또는 나쁜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1. 싱가폴이 재미있는 이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싱가폴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저러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그야말로 다문화 다언어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의 경우에도,
국적으로 따지면 거의 90% 이상이 싱가포리언이고,
나머지는 말레이시아나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싱가폴 영주권자인 경우도 있다.
또 인종으로 따지면,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의 사람들이 섞여 있다.
종교도 정말 다양하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등등이 다 같이 섞여 있다.
종교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부분은
중국계통의 싱가폴 사람들의 경우 한국과 비슷한 유교적 사상도 함께 몸에 베어 있으면서 종교가 불교인 경우가 많이 있다.
때로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자그마한 도시국가에 모여 살다 보니,
국가 정체성의 문제가 대두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다양성 그 자체가 싱가폴의 정체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싱가폴에 살게 되면 이러한 인종,문화,종교의 다양함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많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 자체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삶의 요소를 제공한다.
싱가폴이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싱가폴 주변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정말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외국은 언제나 멀게 느껴지는 개념이다.
대한민국이 섬나라는 아니지만, 사실상 우리나라는 섬나라나 다름 없다.
그런데 오히려 정말 섬나라인 싱가폴의 경우 섬나라의 느낌이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
비록 엄청난 교통체증을 통과해야 하지만,
시내버스를 타고 다리 하나를 건너면 말레이시아에 갈 수 있고,
비행기로는 1시간 남짓이면 쿠알라 룸푸르에 도착할 수 있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쿠알라 룸푸르 까지 싱가폴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또 배를 타고 40~50분만 가면 인도네시아의 섬 휴양지에서 1박 2일로 주말 보낼 수도 있다.
베트남, 태국 그리고 캄보디아 등 얼마 든지 본인이 경제적인 준비를 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면 싱가폴에 사는 동안 다양한 삶의 경험을 맛볼 수 있다.
2. 싱가폴이 재미없는 이유
개인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겠지만, 싱가폴이 재미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어느정도 싱가폴 생활에 익숙해지고 난 이 후 부터일 것이다.
우선, 싱가폴은 정말 작다.
보통 싱가폴이 우리나라의 서울과 비슷한 면적 이라고 하는데, 실제 사람들이 생활하는 면적은 서울에 비해서 훨씬 적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싱가폴 지도의 한 가운데는 우리나라의 개발제한구역과 같이 습지 보족구역 같은 것이 크게 차지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싱가폴의 번화가는 싱가폴의 남쪽 지역에 주로 형성되어 있고, 싱가폴 전체를 크게 원으로 그리면서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싱가폴의 주요 상업지구나 관광지구 자체가 그리 큰 규모가 아니어서, 싱가폴에 살다보면 이제 이러한 지역들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동네가 되어 버린다. 또한, 싱가폴의 주거지역 역시, 싱가폴의 가장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HDB라고 하는 아파트와 콘도미니엄들이 대부분인데, 싱가폴 어느 동네를 가봐도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도로 표지판이나 건물 이름을 확인해야 내가 어느 동네에 와있구나 라는 확인할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면적 자체가 워낙 작다 보니,
싱가폴에는 여가를 즐기고 누릴 만한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똑 같은 쇼핑몰
똑 같은 쇼핑몰 안에 있는 똑 같은 가게들
똑 같은 지하철
똑 같은 지하철로 찾아 다니는 똑 같은 모양의 동네들
사실 싱가폴의 단조로움에 한번 실증이 나기 시작하면
이 또한 쉽게 벗어나기 힘든 싱가폴 생활의 슬럼프 중에 하나이다.
싱가폴이 재미없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싱가폴에서 재미있는 것을 즐기는데 드는 비용이 꽤나 비싸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삶의 재미를 느끼고 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행도 매일 같이 다닐 수 없는 것이고,
결국엔 사람들끼리 만나서 수다떨고 먹고 마시는 것이 삶의 즐거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싱가폴에서 소위 사교적인 외식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더욱이 한국 사람이 싱가폴에서 한국 음식과 한국 술을 맛보기 위해서 드는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지인들과 단촐히(?) 쏘주 몇 잔에 삼겹살을 구워먹고 나오는 비용이 약 150~170불 정도 된다.
거의 12~14만원 수준이다.
이해하기 쉽게 소주 한병을 만원이라고 보면 된다.
세명이서 소주 3~4병 정도를 마시면, 4만원이 기본으로 깔리는 셈이다.
그리고 계산서에는 음식 가격의 17%가 더 청구된다.
GST 7%
Service Charge 10%
예를 들어서 100불 정도의 음식을 먹으면 117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120불 정도의 음식을 먹으면, 140불 정도가 실제 계산해야 하는 금액이다.
별로 서비스를 받은게 없다고 느껴져도 Service Charge는 거의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좋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싱가폴에서 친구들과 단촐히 외식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한국에서의 5~8만원 수준의 거의 2배라고 생각하면 거의 맞을 것 같다.
소득적인 부분을 살펴봐도 싱가폴에서 재미있는 삶을 사는건 만만치 않다.
싱가폴의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급여수준이 결코 한국 보다 높지 않으며,
오히려 싱가폴의 물가수준은 한국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지 않다.
이 말인 즉, 싱가폴에서의 가처분 소득이 한국에 비해서 훨씬 적다는 것이다.
가처분 소득이 적은데 유흥을 즐기는데 드는 비용은 한국보다 비싸니,
상대적으로 느끼는 삶의 재미가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돈이 많은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돈이 많으면 한국이든 싱가폴이든 세계 어디에서든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을 것이다.
싱가폴 유학이나 취업 또는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면,
한국에서 누리던 삶의 재미라고 하는 것에 대한 기준을 조금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싱가폴에서 한국에서 누리던 삶의 즐거움을 그대로 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싱가폴에 오면, 싱가폴 생활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적응해야 하고,
또 싱가폴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재미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싱가폴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재미있지 않을 확률이 크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싱가폴에서도 결국엔 삶의 행복은 마음에 달려 있다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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