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택시는 꽤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해준다. 그래서 나는 택시 타는 것을 좋아한다. 택시기사분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대화를 통해 내가 처음으로 방문한 지역과 나라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택시기사분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결국 택시기사 한분과의 대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싱가폴에 처음 왔을 때에도, 싱가폴에 대해 더욱 빨리 배우고 적응하기 위해 일부러 택시를 즐겨타곤 했었다. 물론, 모든 택시기사분들의 생각과 의견이 100% 정확하고 균형잡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택시기사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듣게 되는 싱가폴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싱가폴은 지금 택시 전쟁중


싱가폴 사람들은 Grab이라는 택시 어플을 많이 사용한다. 개념은 Uber와 똑같다. 그런데 Grab은 싱가폴 태생의 회사이고, 싱가폴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Grab의 인기는 Uber를 능가한다. 나도 처음에는 Uber와 Grab을 그때 그때 생각나는데로 사용했었지만, 이제는 거의 Grab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Grab(그랩)이라는 민간 택시(어플 서비스 제공) 회사에서 Comfort DelGro(콤포트 델그로)라는 싱가폴 최대 택시회사의 기사들에게 굉장히 파격적인 문자를 발송했다. Grab(그랩)과 제휴된 택시회사로 소속을 옮기면 택시 렌탈비(사납금)의 40% 이상을 할인해주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택시 시장에서의 공급 과잉 현상이 일어나면서, 경쟁 회사들간의 택시기사 빼앗기(?)가 한창인 것이다. 특히, 택시 승강장, 전화 호출, 길거리 픽업과 같은 기존 방식의 택시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회사들과 Grab과 Uber처럼 어플리케이션 기반의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더욱이, Grab과 Uber는 자기 차량을 소유한 개인들도 파트타임 삼아서 얼마든지 돈 벌이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에, 싱가폴 택시 시장은 그야말로 전쟁중이다. 


싱가폴 택시 시장은 그야말로 전쟁중이다. 



#택시 과잉공급이 의미하는 것


2017년 상반기 기준, 싱가폴에는 9개의 택시회사가 영업을 하고 있고, 여기에 Grab과 Uber 운전자들을 포함해서, 약 80,000대의 차량이 택시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인구 약 560만명의 자그마한 도시국가에서 택시영업을 하고 있는 차량이 자그마치 8만대 라는 것이다. 싱가폴 인구 560만명(외국인 포함)을 택시 8만대로 나누면 택시 1대당 70명의 잠재고객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70명의 잠재고객들 중에 개인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거나, 버스와 MRT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택시 1대당 잠재고객의 수는 더욱 작아지게 된다. 단, 관광객 변수는 고려하지 않았다. 싱가폴에 처음와서 택시를 타고 다닐 때, 싱가폴 택시기사들의 수입이 그리 많지 않겠다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여러분이 짐작하실 수 있는 수준보다 아마 더 적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러한 택시 과잉공급 상태가 발생하게 된 것일까?


택시 과잉공급 현상이 발생하면, 택시 기사들의 소득이 감소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Uber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여러가지 논란 끝에 Uber 영업은 결국 승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이 자그마한 나라에서 택시회사가 9개가 넘고, Grab에 Uber까지 영업허가를 내줬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아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경제활동인구의 상당 부분을 택시 시장에서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싱가폴의 다른 산업군에서 자국 노동력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실업자 대량 배출을 방지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다.  


보통, 만15세 이상의 사람들을 노동가능 인구라고 보고, 이 노동가능 인구는 다시 비경제활동인구와 경제활동인구로 나뉘어 지는데, 보통 실업률 이라고 말하는 것은 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의 비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활동인구에 해당하는 사람이 어찌됐든 택시운전이라도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실업률 지표에서 제외된다. 당연히 예상했던 것이지만, 자기 소유의 차량으로 Grab이나 Uber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닌, 정식으로 택시를 렌탈할 수 있는 자격은 싱가폴 시민권자에게만 허락된다.싱가폴의 택시 시장이 자국민 실업 방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더욱 명확히 느끼게하는 부분이다. 



#택시을 통해 엿보는 싱가폴 사회와 취업 이야기


택시는 그 사회의 경제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진단 할 수 있는 청진기와 같다. 전업으로 택시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직을 하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일도 택시운전이다. 


요즘 Grab 택시를 호출해서 기사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유독 부업으로 Grab을 뛰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중에는 본인의 월급이 너무 적어서 생활비를 더 벌기 위해 운전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실직을 하고 임시로 운전을 하면서 재취업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싱가폴 시민권자들은 이렇게 운전이라도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약, 외국인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면, WP의 경우 1주안에, SP의 경우 2주안에, EP의 경우 4주안에 소위 얄짤(?)없이 싱가폴에서 떠나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실직을 한 사람이 4주안에 해당 국가에서 사라지면, 그 사람은 실직자 통계에 포함되지 않게 된다. 바로 여기에 싱가폴의 실업률이 EU평균이나 OECD 국가들의 실업률보다 낮게 집계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숨어있기도 하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한 나라에서는 택시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싱가폴은 채용시장이 유연한 나라이다. 쉽게 말해서, 고용주가 one-month notice를 날리고 직원을 해고하는 절차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permanent 직원과 contract 직원의 차이점이 도대체 뭔가 싶을 때도 있다. 단, 영주권자와 비영주권자의 차이점은 크다. 당장, 영주권자는 직장에서 one-month notice를 받고 실직을 해도, 싱가폴에 계속 머무를 수 있지만, 비영주권자는 한달 안에 싱가폴을 떠나야 한다.


최근, 싱가폴에서 2년 정도 알고 지내던 지인 한명 한테 연락이 왔다. one-month notice를 받았다는 것이다. 중국어도 유창하고 성격도 꽤 괜찮은 친구인데, 하반기 회사 구조조정으로 소속해있던 부서가 타부서로 흡수되면서 one-month 통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 같았으면, 웬만하면(?) 어떻게든 타부서에서 인력흡수를 하려고 했을법 한데 말이다.  


싱가폴 취업을 준비하는 한국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직무도 중요하고, 연봉도 중요하고, 여러가지 베네핏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의 안정성이다. 외국인으로써 외국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고 도전이다. 영주권과 같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비자가 없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간혹, 한국에 있는 해외인력송출업체(소위 헤드헌팅 업체)들의 싱가폴 일자리 광고를 클릭해서 읽어볼 때가 있다. 월급도 월급이지만, 해당 포지션에 대해 지나치게 핑크빛으로 써놓은 경우를 발견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는게 알고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많지 않다. 결국 가장 중요하게 짚어봐야 하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고, 또한 다음 커리어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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